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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지하철에서> 4월 16일에 / 홍세화 -4월 16일 방송 등록일 2015.04.16 20:49
글쓴이 (주)라디오방송오늘 조회/추천 1229/12

4월 16일에

-홍세화

2015년 4월 16일 방송 <다시듣기>


  오늘은 4월16일입니다. 오전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하늘도 슬펐나 봅니다. 대낮에도 사위가 컴컴했던 탓인지 제 눈에는 그냥 비가 아닌 검은 비가 내리는 듯했습니다. 1년 전 오늘을 떠올립니다. 그 차갑고 깜깜한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 생각만 해도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이 다가오는 게 저만의 일이 아닐 터인데, 지금 이 비를 맞고 있을 유가족들의 심경은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애당초 실종자라는 말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명칭과 실질은 일치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실종자라는 말은 “종적을 잃어 간 곳이나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하지만 희생자들은 실종된 게 아니라 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국민 모두 두 눈으로 보았고 그래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당국자들과 그들의 발표를 따를 줄만 아는 앵무새 언론들에게는 실종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정부는 연일 함정 수백 척, 항공기 수십 대, 잠수요원 수백 명이 구조 활동에 나섰다고 발표했습니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칠흑같이 어둡고 차가운 사지에 둔 채 속수무책으로 발만 동동 구른 부모들에게 그 숫자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기울어졌던 세월호는 결국 뒤집어져 꼬리만 보였다가 기어이 차가운 바다물 밑으로 사라졌습니다. 절체절명의 시간은 실종이란 말에 대응한 ‘수색’작전으로 허망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렇습니다. 희생자들은 실종된 게 아니라 수장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류 매체들은 정부의 보도 자료를 그대로 옮겨 수백 대의 함정과 항공기, 수백 명의 잠수부가 동원되었다고 전했습니다. 국가의 역량이 총동원된 양 요란을 떨었지만, 이른바 골든타임에 세월호 근처라도 다가간 건 잠수부 수십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진실은 이것뿐입니다. 우리는 에어포켓에 걸었던 가냘픈 희망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또 유병언을 둘러싸고 언론매체들이 쏟아냈던 황색뉴스들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에게 남은 진실은 단 한사람도 구출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며 힘센 자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며 그 어떤 진실도 인양할 의지가 대통령과 집권세력에게 없다는 점입니다.        


  정작 실종된 것은 희생자들이 아니라 대통령과 국가였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배의 수명을 늘여준 데서부터 배를 개조하고 과적하고 적재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단계에서도 국민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규제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에게 배와 운명을 동일시하게 이끌어주는 일체감이나 안전점검에서도 국가는 없었습니다. 세월호는 바닷물 밑으로 사라지면서 국가의 부재, 국가 시스템의 부재를 증언했습니다. 우리가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겨진 최소한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까지 특별조사위원회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집권세력의 끈질긴 방해공작으로 유가족이 요구한 기소권과 수사권도 갖지 못한 특별조사위원회인데 이마저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하도록 집권세력은 끈질기게 획책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다른 날도 아닌 오늘 오후에 외국을 순방한다고 떠났습니다. 전국민적으로 조의를 표해야 하는 날에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대통령을 비롯하여 이 땅의 집권세력이 국민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국가수반이 순방차 외국에 나가 있다가도 국내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면 순방 일정을 중지하고 급거 귀국합니다. 최근의 일만 보더라도 독일의 저가비행기가 알프스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을 때, 외국에 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급거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416 세월호 참사가 지금 일어난 게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늘 대통령이 외국으로 떠난 일은 더 심각합니다. 외국순방 일정을 416 이후로 조정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가볍게 본다는 뜻이고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는 국민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작년 참사 당일 7시간이나 실종되었던 대통령으로서 작은 염치라도 있다면 1주년인 오늘 만큼은 유가족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게다가 대통령이 부재하는 27일까지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신합니다. 이완구 총리는 지금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합니다. 온 국민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려고 숙연해지는 추모일에 대통령은 해외로 떠나고 검찰 수사를 받는 식물 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저에게는 416 이후 1년이 지난 오늘 416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그 누구보다도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시위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과연 앞으로 서정시를 쓸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이 나왔엇습니다. 이 물음이 지금 우리에게 적절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아우슈비츠 이후에 아우슈비츠를 낳은 나치체제는 무너졌습니다. 4-16을 낳은 국가 없는 권력체제는 우리 눈앞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다시 말해,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과제, 그래서 집권세력이 사익 추구를 국민의 생명과 공익적 가치 앞에 내세울 수 없도록 국가 시스템을 온전히 구축해야 하는 과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동력과 가능성은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와 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지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맹자는 일찍이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인간의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인간은 되지 못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괴물로 태어나지 않지만 괴물적인 것에 익숙해지면 더 괴물적인 것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일 위험이 있습니다. 416 참사가 또 다시 익숙해지는 것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용삼참사, 강정, 평택, 밀양보다 더 두려운 결과를 우리에게 남길 위험이 있습니다. ‘부수적 피해’라는 말이 이웃의 고통과 불행에 공감능력을 상실하고 별일 없이 살아가도록 이끈다면, 우리 환경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고 규정하는 차원을 넘어 유가족을 조롱, 비하하고, 단식하는 앞에서 희희덕대며 식사 파티를 벌이는, 차마 인간이라 하기 어려운 괴물적 모습들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아무리 우익이라도 이런 짓을 벌이지 않습니다. 그런 행위가 그들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묵인되고 심지어는 은근히 부추겨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 저는 가슴 속에 품어왔던 한 가지 물음에 관해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악인이라도 죽음의 순간에는 순수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문의 탓일까요, 한국전쟁 전후에 학살행위를 저질렀던 사람들 중에, 또 7-80년대 고문 행위를 저질렀던 사람들 중에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역사가 제대로 청산된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민주주의의 성숙은 민의 성숙, 민주의 성숙 없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민의 성숙, 민주의 성숙을 통하여 정치적 역학관계를 변화시키는 그만큼만 집권세력의 오만함과 파렴치함이 줄어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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