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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지하철에서> 기본소득제 / 홍세화-4월 23일 방송 등록일 2015.04.23 20:48
글쓴이 (주)라디오방송오늘 조회/추천 3378/11

기본소득제

-홍세화

2015년 4월 23일 방송 <다시듣기> 



  대통령이 순방차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국무총리가 불법적인 금품수수 혐의를 받고 물러나는 등 한국의 정치상황은 혼탁하기만 합니다. 오늘 주간 칼럼 <지하철에서>는 이런 정치상황과는 동떨어진 주제로 기본소득제에 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기본소득제는 근래 유럽과 캐나다 등지에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19세기가 노예제 폐지의 세기였고 20세기가 보통선거권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기본소득제의 세기가 될 것이다.”


  벨기에의 판 파레이스 교수의 말입니다. 기본소득제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매달 똑같은 금액을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재산과 소득을 묻지 않고 모두에게 주는 기본소득의 금액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필수품과 서비스 비용에 근거하는데, 각 나라의 경제력에 의해 규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매월 일인당 300만 원에 가까운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연방헌법 안건이 재작년에 발의되어 늦어도 내년에는 국민투표에 부쳐질 예정입니다. 학자와 정치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대략 월 700유로, 독일에서는 월 1천 유로의 금액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 80-100만원 가량 됩니다.


  한국의 경제력으로는 월 30만 원에서 50만 원까지 가능한데, 월 30만 원으로 적게 잡더라도 송파 세 모녀의 경우 월 90만 원의 기본소득이 보장되므로 집단 죽음의 길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꿈같은 얘기라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꿈꾸기를 스스로 거부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만이, 또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꿈꾸기를 말입니다.


  기본소득제의 목적은 복지 사각지대를 없게 해준다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본에 대한 노동의 지위가 점차 추락하고 있는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본이 자동화, 정보화에 이어 인공두뇌까지 장착된 생산수단을 전유하면서 노동은 일자리 수 자체도 줄어들고 있는데, 그 위에 과거에는 노동의 숙련성으로 자본에 맞선 균형력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 잃고 있습니다. 숙련성이 요구된 인간노동의 지위를 자동화, 정보화, 인공두뇌를 장착한 기계설비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2차산업에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열악해질 때, 3차서비스 산업에서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하지만 대부분 감정노동인데다 임금조건도 나쁘고 일자리도 무척 불안정합니다.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존재조건이 프롤레타리아에서 프레카리아트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지요. 프레카리아트란 불안정노동자를 뜻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노동자들이 처한 구체적 현실을 잠시만 살펴봐도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포함된 자’에서 ‘배제된 자’로의 일방통행만 가능하다는 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와 관련하여 앙드레 고르라는 학자는 1980년에 이미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라는 저작을 썼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의 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다.” <경제적 공포>의 작가 비비안느 포레스테가 남긴 말입니다. 19세기 이래 20세기 중반까지 근대 산업사회에서 착취당하는 비극으로부터 달아나려 했던 인간은 21세기에 노동의 지옥문 앞에서 서성이며 그 문으로 들어가 착취당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애타게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아래 미래의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면서 불안은 가중되고 있고 불안이 가중되면서 젊은이들은 더욱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불안은 인간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성이 확장되면서 발현되기보다는 축소되거나 훼손될 위험이 큰 것입니다. 기본소득제는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강제한 현실 아래 인간의 존재조건이 더 이상 추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기본소득제는 아직 현실정치 바깥에 놓여 있고 주류매체들에게도 관심 바깥에 있습니다. 현실 정치인들은 그들에게 기득권을 누리게 해주는 정치현실에 안주하고 있을 뿐이고 언론 환경도 기자를 비롯한 언론종사자들이 민중이 처한 사회현실을 분석, 비판하고 새로운 전망을 내놓기보다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의 동정을 보고하는 일을 주된 소명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주류 정치권과 언론 매체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작년 3월에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1천 명 선언이 발표되었고 ‘기본소득공동행동 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으며 시사주간지《한겨레21》은 1000호 기념호에서 표지기사로 (‘기본소득 이제는 상식입니다’)를 다룬 바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 7월에는 기본소득 네트워크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으로 있습니다.


  저 또한 기본소득공동행동의 제안자 중 한 사람인데, 솔직히 기본소득에 관한 공부를 최근에 시작한 초심자에 불과합니다. 공부가 부족함에도 기본소득에 강하게 끌리게 된 데에는 한 때 두 아이와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땅에 떨어져 불안이라는 이름의 유령과 씨름했던 개인적 경험이 작용했습니다. 거기서 보편복지인 가족수당과 무상교육, 선별복지에 속하는 주거수당의 혜택을 받아, 인간영혼이라고 부르든 존엄성이라고 부르든 덜 훼손된 채 살아남은 자로서 이 땅에서 속절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여간해서는 신문의 한쪽 기사에도 오르지 않는 죽음의 행렬 앞에서, 그 행렬에 오르기 전이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지만 그래도 눈에 잡히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존재들의 강요된 굴종과 참담함 앞에서 무감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만나는 뉴스라는 건 어떤 것들인가요? 정치사회 기사는 불법적인 금전수수나 부패 소식이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고 경제기사는 재벌기업이나 주식시장에 관한 소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프란치스코 교종이 처음으로 서명한 권고문 <복음의 기쁨>의 한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규범이었듯이, 우리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경제는 사람을 죽일 뿐이다. 집 없는 늙은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은 뉴스가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21세기에 주창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는, 또 하나의 복지전략을 넘어서, 오늘의 세계와 인간성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 그 자체로 삶을 존엄하게 영위할 권리를 가지며, 사회와 국가는 어떤 조건도 없이 이 영토에 존재하는 모든 개인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름 아닌 잔혹성의 한계를 잃어버린 자본주의체제와 이 체제가 강제하는 삶의 공포 앞에 짓눌린 우리에게 지금과는 다른 세계, 다른 삶의 형식을 발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기본소득제에 반대하는 오래된 통념이 있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먹지 않으면 일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나친 이상주의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비현실적일까요? 지금의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약속하는 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이며 거짓말입니다. 기본소득은 무엇보다 우리의 인간적 가능성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공동성의 발견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진 자’들에게 주머니를 열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바꾸겠다는 의지이며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하철에서> 4월 16일에 / 홍세화 -4월 16일 방송

<지하철에서> 세상을 개탄할 뿐 / 홍세화 -4월 9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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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생각하는 사람 맞나요? / 홍세화 -3월 26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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