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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지하철에서> 노동절을 맞아 / 홍세화-4월 30일 방송 등록일 2015.04.30 20:38
글쓴이 (주)라디오방송오늘 조회/추천 1050/4

노동절을 맞아

-홍세화

2015년 4월 30일 방송 <다시듣기>



  내일은 5월1일 메이데이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생일로 기념하는 날로서, 가령 유럽에서는 거의 모든 나라가 이 날을 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저도 파리에 머무는 동안 5월1일에 공화국광장에서 바스티유광장까지 노동자들의 시위대열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메이데이는 지금으로부터 129년 전인 1886년 5월1일 미국의 시카고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주창하며 시위를 벌였던 일이 그 단초가 되었습니다. 당시 길게는 하루 12시간, 짧아도 10시간 동안 일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내걸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셋으로 나누어 8시간은 잠자고 8시간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나머지 8시간은 나의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해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이 주장을 흔히 ‘빵과 장미’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장미를 가꿀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빵을 먹기 위해 일해야 하지만 그 시간 외에 자유로운 나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내 인생의 장미를 가꿀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지요.

 

  거의 모든 사회 진보의 역사 과정이 그렇듯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했던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시위도 당시 미국을 지배하고 있던 정권의 엄중한 탄압을 받아야했습니다.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했고 며칠 뒤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을 빌미로 노동운동 지도자들에게 반란죄를 들씌워 재판을 통해 처형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7년 뒤에 재심을 통해 무죄가 입증되었지만 이미 노조지도자들의 죽은 목숨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주 5일제 근무, 하루 8시간 근무가 기준이 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상 자본주의사회 아래 지속된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얼마 전 상영된 <레미제라블>을 관람한 분들은 코제트의 어머니 팡틴이 장발장 주인으로 있는 공장에서 구슬 꿰는 노동을 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녀는 하루에 몇 시간 일했을까요? 내 기억이 옳다면, <레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는 1823년의 일로 그려진 당시 노동자들이 하루 몇 시간 일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면, 파리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은 프랑스에서 ‘미완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1830년 ‘7월혁명’의 2년 뒤인 1832년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실제 프랑스 노동사에서 '카노의 반란'이라고 불리는 리용 지역 견직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시기와 만납니다. 리용 지역에서 견직노동자들이 전면파업을 일으켰을 때 파리의 중앙정부 또한 2만 명의 군대를 보내 잔인하게 진압했습니다. 그때까지 새벽 5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16시간 일했던 그들이 진압된 후 14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줄었다는 기록으로 보건대, 코제트의 엄마 팡틴의 하루 노동시간도 14~16시간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코제트의 엄마 팡틴은 그 일자리에서조차 간단히 쫓겨나 인생의 막장까지 추락한 뒤 슬픈 삶을 마감합니다. 그녀를 지켜줄 노동조합도 없었고 노동계약서도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가장 중요하게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노동자는 아무 때나 노사계약을 해지할 수 있어서 일자리를 옮길 권리가 있지만, 사용자는 그럴 권리가 없어서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는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입니다. 하루 8시간 노동제와 마찬가지로, 이 정규직제도 또한 정착되기까지 1세기 이상 자본주의 아래 세계의 노동자들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했고 싸워야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내가 노동자라면, 그래서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본이 없어서 육체적 품을 팔건, 정신적 품을 팔건, 품을 팔아 생존하고 있고, 하루 14-16시간이 아닌 8시간 기준으로 일하고 있으며 일자리에서 쫓겨날 위험이 없는 정규직노동자이어서 나와 내 가족의 삶을 나름대로 설계할 수 있다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세계의 선배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 잠시라도 돌이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5월1일 메이데이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노동조합이 왜 중요한지, '단결'이 왜 노동자에게 가장 절실한 언어가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노동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사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돈도 없고 권력도 없습니다. 자본읁 그 자체로 힘이 있고 또 국가권력을 관리할 힘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막강한 자본과의 힘의 역학관계에서 노동자들이 힘을 갖는 길은 하나로 뭉치는 데 있을 뿐이고 그 길만이 굴종하지 않고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에 관해 알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 서울시가 서울교육청과 함께 중고등학교에서 노동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너무나 늦었지만 그래도 참으로 반가운 소식입니다. 우리는 모두 상식처럼 한국사회가 자본주의사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초중고 시절에 두루 있는 사회 과목에서 가장 중요하게 공부해야 할 내용으로 빠져선 안되는 게 자본주의입니다. 우리는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회 교과목을 왜 공부할까요? 우리 각자는 사회적 동물이므로 사회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사회 안에서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다면 ‘사회’ 과목에서 가장 중요하게 공부해야 할 게 ‘자본주의’라는 점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서 자본주의에 관해 무엇을 배웠을까요? 노동과 자본 사이의 모순에 관해, 자본주의의 역사, 노동운동의 역사를 배웠을까요? 오늘 주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하루 8시간 일하기까지 자본주의 아래 세계의 노동자들이 어떤 과정을 밟고 겪었는지 우리는 사회 교과목에서 공부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 칼럼을 작성한 것도 우리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노동자들 중에서 노동자의 생일인 5월1일 메이데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적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공부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중3때 사회 교과 시간에 모의노사협의의 시간을 갖지도 않았고 고2때 “노동조합이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시간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오늘의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슬프고 억울한 현실입니다. 백년 이상 노동자들이 외쳤던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외침은 20세기말 한국 땅에서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노동이 분할된 것입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식당노동자들을 비정규직화하려는 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과정을 화면에 담은 “밥.꽃.양.”이 상징하듯 분할은 가장 약한 고리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물꼬가 트이면 전체를 삼키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오늘 ‘기아’차 로고가 붙은 자동차 ‘모닝’을 생산하는 노동자는 100% 비정규직입니다. 그들은 모기업인 기아차의 노동자도 아니며 생산업체인 동희오토의 노동자도 아닌, 동희오토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입니다.


  이렇게 오늘 한국의 자본과 국가권력은 노동을 ‘포섭된 자’와 ‘배제된 자’로 분리하여 이 둘 사이에 적대의 경계를 짓게 하여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분리되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자신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완충지대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한 사업장 안에서 노조가 따로 조직되기도 하여 둘 사이의 연대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상징적인 예로 4월24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정에 거의 노골적으로 반대한 현대자동차 노조 집행부를 들 수 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냈던 강력한 민주노조였던 현대자동차 노조가 노동이 분할되면서 그렇게 달라진 것입니다.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노동절을 맞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봅니다. 단 한 분이라도 세계의 노동자들이 생일로 기념하는 5월1일 메이데이의 의미를 되새기기를 기대하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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